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경 전투 (문단 편집) === 혼란을 수습하고 지켜내다 === '''1011년 1월 27일(음력 1010년 12월 15일, 전쟁 29일차)''', [[조원(고려)|조원]], [[강민첨]], 홍협, 방휴 등이 조원을 병마사로 추대하고, "신사에서 빌고 점을 쳤더니 길한 징조를 얻었다"며 흩어진 군사들을 수습해 성문을 닫고 굳게 지켰다. '''1011년 1월 28일(음력 1010년 12월 16일, 전쟁 30일차)''', 거란의 후방에서 [[양규]]가 거란의 보급선이던 곽주성을 탈환했다. 이 소식에 거란군은 전면퇴각 또는 서경이나 개경을 공략해 약탈로 보급을 충당하는 수 밖에 남지 않았다. '''1011년 1월 29일(음력 1010년 12월 17일, 전쟁 31일차)''', 거란 성종은 5일차가 되어가던 서경의 포위를 풀고 동쪽으로 이동해 개경으로 향하기로 결정한다. '''1011년 1월 31일(음력 1010년 12월 19일, 전쟁 33일차)''', 서경 신사 일대에 거란의 군사와 말이 모두 쓰러질 정도로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어, 거란군의 진격이 다소 지연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